피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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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11-04 09:44 조회6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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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
쉬면 괜찮을 거야.
이유 모를 피곤함 속에 연일 보내고 있다.
그동안 몸 관리를 하지 않은 탓일까?
아니면 무리할 정도로 분주한 시간들을 보내서 그런가?
그렇다고 잠을 적게 자는 것도 아니다.
하루 일과는 그전하고 거의 비슷하게 보내고 있다.
그런데 몸은 이상하리만큼 피곤하다.
생각해 보니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11월 1일부터 다니엘 기도 2023을 시작했다.
조금 늦은 저녁까지 하기 때문에 새벽기도회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 잠을 조금 늦게까지 잘 수가 있다.
‘늦게까지 푹 좀 자야겠다. 그러면 모든 피로가 풀리겠지.’
그런데 몸은 그렇게 반응하지 않는다.
아무리 늦게 누워도 어김없이 새벽기도회 나가는 시간이면 눈이 떠진다.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날이 밝는다.
아무것도 못 하고 그냥 시간을 흘려보냈다.
흘려보낸 시간을 아까워하다 보니 기대감과 같이 찾아온 “쉼”은 머물 틈을 찾지 못한 채 주변만 맴돌다가 사라진 느낌이다.
행여 틈이 보이면 쉼이 다시 찾아올까 봐, 의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는 불안감으로 빈틈을 아주 꼭꼭 막아 버린다.
이래 놓고는 몸이 피곤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새벽기도를 할 때는 안 피곤했는가?
아니다. 그때도 물론 피곤했다. 오히려 더 피곤했다.
어떤 때는 너무 피곤해서 일어났는데 눈이 안 떠져서 한참을 앉은 자세로 있다가 겨우 몸을 세워서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의 피곤과 지금의 피곤은 질이 다른 것 같다.
그때는 보람이 있는 피곤이었다면, 지금의 피곤은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다는 자책감에서 온 피로이다.
이래저래 목사는 피곤함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이러려고 목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이러려고 목사가 되었다.
어차피 피곤함 속에 살아가야 한다면 이왕 이런 상황을 즐기면서 살아야겠다.
짓누르는 피곤함에게 이 말을 던져본다.
‘난 즐겁다고! 피곤하니 더 즐겁다고!’
내가 즐거워하는 이유가 있다.
아니 즐거워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나를 당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하신 내 주님의 사랑 때문이다.
내 주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내가 목사가 되었겠는가?
내 주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피곤이라는 녀석과 이렇게 씨름할 기회를 얻겠는가?
내가 피곤이라는 단어를 떠오를 수 있는 것도 다 내 주님께서 나에게 기회를 주셨기에 그렇다.
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피곤해진다 해도 나는 즐기면서 살련다.
아무리 무거운 짐으로 다가와서 나를 누른다 할지라도 난 피곤을 허락하신 내 주님께 감사하며 살련다.
피곤 아!
내 앞에서 평지가 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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