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을 후원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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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2-16 00:44 조회48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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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을 후원 받습니다.”
지난주간에는 대부분의 학교들이 졸업식을 하였습니다.
우리 교역자들도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서 유치원으로 해서 여러 학교를 분주하게 다닌 한 주간이었습니다. 저도 두 아이가 졸업을 해서 졸업식에 참여해 보았습니다. 요즈음 전에 비해서 졸업 문화가 많이 바뀐 것을 보았습니다.
큰 아이 학교에 갔을 때 일입니다. 행사를 다 마치고 학교 정문을 나오는데 두 명의 여학생이 박스를 들고 서 있는 것입니다. 왜 저렇게 서 있나 가까이 가 보았습니다. 졸업생들에게 교복을 기증 받는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관심 없이 그 학생들 옆을 지나쳤습니다. 그냥 갈 수가 없어서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애! 저기 후배들이 교복을 후원 받는데 벗어 주고 가면 안 될까?” 말이 떨어 기지가 무섭게 “응 그래” 하면서 위에 마이를 훌쩍 벗어 주는 것입니다. 기특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위에 교복을 벗으니까 안에 조끼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도 벗어 주면 안 될까? 치마도....”
정색을 합니다. 어떻게 여기서! (물론 가능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길거리에서 여자 아이가)
당연한 것인데 그래도 마음은 좀 그랬습니다. 환경이 허락 되어서 다 벗어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면서 마음 한편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 아닌가? 아니 나의 모습이다.
남에게 베푼다고 하지만 베푸는 것을 보면 나에게는 그다지 필요 없다는 것을 주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위에 옷은 쉽게 벗어 줄 수 있어도 조끼와 치마는 벗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길거리이니까,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아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길거리에서 조끼와 치마를 벗을 수가 있는가? 그리고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 만나처럼 그리 절박한 상황도 아닌데....
물론 당연한 소리다. 그러나 평소 작은 것을 못하는 사람은 이담에 절대로 큰일도 못한다. 그 일이 절박하고 절박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준비를 했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리 알았으면 옷가지를 준비해 갔으면 좋았을 것을.... 전부 다 못한 것을 작게나마 핑계 거리를 찾아봅니다. 다음에는 미리 옷가지를 준비해 가야겠습니다.
오 주님이시여!
우리 주님은 종을 위해서 다 벗어 주셨습니다.
그때는 종도 주님의 옷이 별로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옷을 벗어 주셨습니다. 다 벗어 주셨습니다.
그것도 모두가 보는 십자가 위에서 말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종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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